고요한 마음에 조약돌 하나

고요한 호숫가에 조약돌을 던지면, 주위에서 파장이 일어나지만 이내 움직이지 않는 수심 속으로 들어간다.
작은 물웅덩이에 조약돌을 던지면, 존재를 잃어버릴 만큼 가지고 있던 흙탕물을 사방으로 튀겨낸다.

물웅덩이의 입장에서는 날아오는 돌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기 직전인데 그럴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수는 여유가 있다. 일단 의미를 파악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어느샌가 돌을 받아주고는 깊숙한 어딘가에 넣어둔다.

자신에게 잔소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다. 필요한 커뮤니케이션도 잔소리로 받아서 문제다. 마치 그 지적을 받아들면 자신의 과업이 부정당하는 것 처럼. 그냥 문제가 있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되고, 오해하고 있다면 해명해주면 된다. 그게 전부다. 화내고, 우울해하고, 보복할 준비를 하는 등의 불필요한 행동은 에너지 낭비다.

조직 생활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지적도 당하고 지적도 하며 살아야 한다. 동상이몽라고 할 만큼 사람은 생각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 그 사이를 메꾸기 위한 고통스런 의사소통은 피할 수 없다. 예민하게 굴거나, 아예 기만하는 행동은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적을 받을 때는 최대한 고요하게, 필요한 대응만 하고 묻어두는 것이 차라리 좋다.

설명할 수 없으면, 아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답답해서 페북에도 두번이나 올렸던 건데, 아인슈타인이 이미 한 말이었다. 역시 범인인 내가 생각한건 누군가가 이미 생각한 것이리라.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면, 아는 것이 아니다. (바리에이션으로는, 6살 꼬마에게 설명할 수 없으면 아는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이건 뭐죠? 라고 물어봤을 때 금방 생각나지 않으면서 ‘아, 이거 몇년 전에는 알았는데’ 라고 탄식하게 되는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그러면 쿨하게 대답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모릅니다’ 라고. ‘그거 해봤는데 왜 기억이 안날까요? ^^;’ 라거나 ‘이런 것 같았는데 말이죠’ 라고 표현하는 건, 신뢰를 깎아먹는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다.

그럼 그 설명을, 혹은 그 역사를 달달 기억하고 외워야 하나? 원칙적으로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하려면 무작정 외워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원리는 무엇인지, 왜 이런 개념이 필요해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기만의 색인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몰래 찾아볼 수도 있고, 시간을 꼭 벌어야 한다면 ‘반드시 찾아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 는 시그널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자료를 관리해야 할까? 자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앞의 이야기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