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2016)

 

 

1999년 위안부 피해자이신 할머니께서 그리신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된 영화 제작이 14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을 만큼,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 그 영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삼일절에 ‘귀향’을 보고 왔다. 보는 내내 손에 힘이 들어가고 이가 갈리는 분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많이 나왔고, 후반에는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져서 앞이 잘 안보였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시놉시스를 가급적 읽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 앞에 앉아 놀라워해야 할 관객이 되고 싶지, 요약본을 읽고 들어가는 예습과정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그랬지만, 자칫 영화가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행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아무 잘못 없이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핍박받는 끔찍한 생활이 흐르다 극적으로 탈출하는 과정이 그려지지 않을까라고. 여기서 어느 부분을 강조하느냐가 중요했을 텐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영화는 빙의를 소재로 과거의 소녀 혼령을 부른 어린 소녀와 현재의 피해자 할머니를 연결한다. 광복 70주년 특집극인 ‘눈길’ 역시 피해자 할머니와 과거에 죽은 소녀를 연결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건 일종의 망상을 꾸는 개념이었다. 영화에서 취한 방식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할머니와 과거의 소녀를 ‘직접’ 이어줄 수 있다는 것이고 (만지고 안기고), 또 다른 하나는 역으로 현재의 어린 소녀를 과거의 끔찍한 과거로 가두는 장면을 넣을 수 있었단 것이다. 두 번째가 인상적인데, 막상 할머니들께서 피해자라고 하는 것보다, 실제 주위의 어린 중학생 소녀들이 그런 꼴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가 깊게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가시리 가시리잇고’ 는 극중 인물이 부르는 유일한 노래인데, 노래가 너무 갸날프고 절절해서 듣는 순간 울컥했다.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소녀들의 심정을 대신하는 노랫말은 정말 심금을 울렸다. 사실,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 자체에는 조금 의문이 들지만, 노래 하나로 커버한 듯.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순결에 대한 것을 부각시켜야 했는데, 그 중에서도 영화가 ‘초경’이라는 단어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주인공이 그 과정을 겪은 회상을 하며 내심 어른이 되었다는 것에 즐거워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현재 지옥같은 상황에 맞물려 낙차를 더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다.

장면과 상관없이 계속 울리는 주위의 괴성과, 이따금씩 보이는 악랄한 카메라 앵글은 더욱 공격적으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정 장면은 보기 불편할 정도.

영화를 관통하는 ‘이제 집에 가자’ 란 대사가 지속되는 점이 눈에 띈다. 아니, 지속된다기 보다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다가 말미에 툭 튀어나오는 듯 하다. 계속 옆에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마치 주인공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우리도 생각할 수 없었던 건 아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