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 욜로

술을 마실 때는 그 때만 즐거을 뿐이고, 게임을 할 때도 그 때만 즐거울 뿐이다. 숙취에 고통받을 때, 게임 종료 버튼 앞에 있을 때, 우리는 다시 허무함을 느낀다.

쾌락의 순간에는 더 큰 역치를 넘어서지 못하는 유한함에 부딪힌다. 허무감인지, 어떤건지.

친구 중 한 명의 생활 방식은, 요즘 말하는 욜로(YOLO) 에 근접한(?) 삶을 산다고 느껴지는데, 이유는 이렇다. 일단 불안한 계약직인데다 계약 텀도 굉장히 짧은 직종에 근무한다. 그런데도 잘 놀러 다닌다. 너무나도. 그러면서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야지, 정규직도 되면 좋겠지, 계속 놀러 다니고는 싶지… 이런, 쓰고 보니 이 친구는 욜로가 아니다. 내일 살 걱정을 하기는 하니까.

중독은 종합해보면, 더 큰 보상을 요구하는 뇌 어딘가의 장난질이자,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배제시키는 습관의 힘이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올바른 (적어도 사회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성취의 경우, 보상은 즉각적이지 않다. 사실 그 위치를 전이시켜줄 힘을 기르는 과정임에도, 올챙이적 기억이 리셋되듯이 그런 지위를 당연시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게임 한 판 지면 열받고, 술이나 담배가 떨어지면 괜히 불안하다. 보상이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습관은 더 무서운데, 보상기제가 작동하건 말건 옵션은 항상 LRU 리스트처럼 관리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그만큼의 비용이 들지만, 곁에 둔 습관은 그렇지 않다. 초식이 그대로 작동해도, 레시피를 몸에 둘둘 말아둔 듯 아무런 힘도 들지 않는다. 반복적인 작업은 그것이 나쁘건 좋건 간에, 여유 시간에 ‘그냥 할 만한 것들’의 유력한 후보로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 후보는 2선, 3선을 밥먹듯이 할테고.

과연, 여기까지 생각해볼 때 욜로는 중독과 관련이 있나. 소미의 옆집 아저씨도 오늘만 산다고 하는데, 욜로라고 하지 않는다. 다음을 걱정을 하는 자에게, 중독을 이어가는 이 허무함은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욜로는, 실제로 그런 극단적인 허무감을 회피하지 못한 비웃음의 단어는 아닌지, 아니면 정말 해탈했다고 자랑하고 싶은건지 의심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