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지는 추억, 옅어지는 감상

어릴 적 일들이 기억나지 않을 때마다, 나이가 들어가는게 이런건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까먹는 것을 놓고 결론이 너무 심한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어릴 적에도 일어났을 법한 똑같은 이벤트에 반응하는 내 감정이 그 때와는 조금 옅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야, 좀 더 나은 표현이겠다. 무엇이 옅어진 걸까, 설마 신기하고 놀라운 감정일까? 추억은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회사 1층 화장실에서 흩뿌려진 방향제의 향기가, 크레파스를 코 끝에 가져가는 순간을 떠올려낸다. 아내와 같이 손을 맞잡고 걷는 아파트 골목 한 켠이, 풋풋한 스무살 때 대학교 강당으로 되돌아나가면서 꿈 많던 고등학교 때의 하굣길로 도착하게 될 거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추억의 농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향수를 떠올리기 전에 현실적인 생각들이 먼저 가로막는 것이 사실이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전세가 끝나면 힘겹게 찾아나서야 할 새로운 보금자리의 후보들이 그렇다. 옅어지는 것은 추억이 아니라 감상의 채도가 아닐지. 탁하게 만드는 것은 감내해야 하는 현실. 그것이 우리를 낭만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