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이제 내가 무언가 시도하거나 무언가를 세상에 던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합격이든 당선이든 선정이든.
4개월의 작가프로그램에 신청했는데 덜컥 선정되어 떠난 나폴리 여행기를 다룬다. (조만간 꼭 블로그에 남기고픈) 소설 ‘급류’ 를 쓴 정대건 작가의 2024년 여행 에세이. 밀리의 서재에 있어서 컬러풀한 사진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나폴리는
사진도 보고 여행기도 읽어보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더욱 아름다웠고 더욱 지저분했다는 곳. 축구선수 김민재가 끌어올린 한국의 이미지를 한껏 누릴 수 있던 곳. 최고의 에스프레소와 마르게리타 피자, 파니니를 맛 볼 수 있는 곳. 버스 매표소가 따로 없는, 그래서 담배가게에서 버스 매표를 겸하는 곳. 전혀 팔 것 같지 않은 고깃집에 가서도 파니니를 살 수 있는 곳. 버스 시간표는 지켜지지 않고, 그래서 버스 티켓을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늦은 밤에 막차를 탈 때는 인심좋게 그냥 타라고 하는 곳.
마치 현지인들의 암호같아 보이지만, 그냥 다른 것이다. 형식이나 규칙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고.
작가는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날씨가 영화의 운명을, 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던 시기에 비 소식을 보고 있을 때면 정말이지 하늘이 노랬다. 내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휘둘리는 현장……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작가의 개인사를 에세이 사이사이에서 엿볼 수 있었다. 초반에 영화 연출을 시작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졌었다고. 경험을 살려 소설 ‘GV 빌런 고태경’ 을 집필하고 최근에는 ‘급류’ 를 쓴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의무소방으로 군 생활을 보냈단 대목을 읽으면서, ‘급류’ 에 묘사된 소방관들의 모습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은 것이 맞아 떨어졌다.
인연은
나폴리에는 ‘카페 소스페소’ 문화가 있다. 소스페소(sospeso)란 ‘매달린’, ‘걸려 있는’, ‘미루어진’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다. 즉 카페 소스페소란 ‘맡겨둔 커피’라는 뜻으로,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가난해서 마시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행위다. 혼자 와서 두 잔을 시킨다거나, 두 사람이 와서 석 잔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누군가를 위해 ‘달아놓는’ 것이다.
나폴리의 ‘정’ 은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소득격차가 심한 이탈리아 북부에 비해 다 같이 잘 살자는 인정이 특히 이곳에서는 더 짙다고 묘사된다. 앞서 말한 대로 버스도 공짜로 타보기도 하고 말이다.
작가가 나폴리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양장점에서 꿈을 안고 이탈리아에 와서 자신의 양복을 만들기 위해 견습하고 있는 20대 청년의 이야기다. 성공이 보장된 길도 아닌데, 코로나 때문에 한 번 귀국까지 했다는데, 그럼에도 청년은 꿈을 향해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갔다. 작가도, 나도 그의 꿈을 응원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전 마지막 사진이 화룡정점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이국적인, 한번쯤은 가 보고 싶은 사진들이 이어졌다. 여행 에세이로서 참 잘 읽었단 생각이 든다.
나는 저렇게 내 이야기를 녹여서 쓸 수 있을까? 노력해 봐야겠다 우선 여행이라도 가야지
이 말은 분명히 할 수 있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보다 ‘하면 는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다.
재능은 의지가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