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

이 책은, 접근부터 굉장히 쉬웠다. 리디북스에서 무료 대여 기간이 있었고, 동시에 많은 북 큐레이션 페이지에서 이 줄거리를 카드 뉴스나 동영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줄거리가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내용이었다. 과거를 버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남자에게 들이닥친 불행한 과거로부터의 편지 한 통. 악한을 죽여달라는 그 때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달라는 내용이란다. 이 남자의 과거는? 편지의 발신인은? 궁금한 나머지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줄거리

도입부는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한다. 레스토랑과 바를 겸하는 식당의 공동 창업자이자 바텐더로, 사랑하는 아내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귀여운 딸을 둔 가장으로. 하지만 그는 어두운 과거를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간다.

그는 사실 얼굴에 다 드러날 정도의 큰 멍을 가진 사내로, 어릴적 멸시와 동정을 이기지 못하고 강도짓을 일삼는다. 그러다 시비가 붙어 야쿠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그 와중에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자신의 딸이 파렴치한 두 남성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한 뒤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두 피의자에게 사형 선고가 아닌 15년형이 내려진 것에 분노하며, 자신은 이제 기력이 다 했으니 원하는 대로 돈을 받고 두 사람을 죽여달라는 약속을 하나 해줄 수 없겠느냐고 한다. 주인공은 심하게 갈등하지만, 야쿠자에게 붙잡혀 송장이 되기 싫었던 주인공은 ‘지키지 않아도 될 약속’ 쯤으로 생각하고 약속을 한 뒤 돈을 받는다. 그렇게 성형을 하고 누군가의 호적을 받아 새로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15년이 지나고 집으로 도착한 편지 한 통.

그들이 출소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가족을 해치고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협박한다. 주인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까지가 알려진 줄거리고, 이후로는 내 감상만 적겠다.

복선 회수력 : 4/5

아침드라마와 일일드라마를 즐겨 본다면, 대번에 느낄 수 있는 포인트가 바로 복선이다. 이런 장면들은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지만 내포한 힘은 강력하며, 전개 과정에서 이 힘이 마치 콤보처럼 터진다. 아니 왜 갑자기 생판 남의 자식과 남자 주인공을 오버랩 시키지?  남자가 사귀자는데 여자의 저 오묘한 표정은 뭐지?

그런데 잘 보면 복선같이 보이는 장면들이 사실은 아무런 의미없는 장면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메인 커플을 훼방놓기 위해 유학길에서 돌아온 남자 주인공의 소꿉동생이, 질투 몇 번 하더니만 둘 사이를 축하해주는 들러리로 전락한다든지.

이 책은 그런 점에선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결말에 도착하면 뭔가 ‘아, 잠깐만. 그래서 그때?’ 싶을 정도로 콤보가 터진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갑자기 이 모든 원흉이 된 또 다른 사건이 소개되는 시점이 갑작스럽다는 것이다.

마치 (작가는 절대 그렇게 쓰지 않았겠지만) ‘이 사건으로 내가 결말을 설명할건데, 사실은 앞에 뿌려둔 복선을 회수하기 위해서 만든 사건이야’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점수가 깎였다.

 

몰입도 : 4/5

그렇다고 이게 ‘결말을 이끄는 힘이 부족하다’ 라고는 할 수 없다. 다음 내용이 사실 궁금해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니까.

주인공은 편지를 받고 편지의 발신인을 찾기 위해 (밤에 일을 하니까) 낮에 싸돌아다니다가 와이프에게도 의심받고 동업자에게도 의심받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나는 영혼이다. 너가 뭘 하는지 다 보고 있다. 뭐하냐, 출소했다니까 그때 했던 약속대로 죽여달라’ 라고 한다. 그러면서 일터에도 전화를 하고 스마트폰을 배달해서 지시를 하게 하고… 상황은 점점 더 옥죄어 오는데 누가 이러는지는 전혀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정말 영혼인가? 날 쫓던 야쿠자인가? 같이 나쁜 짓을 했던 녀석 중 한명의 짓인가? 그 노인이 자주 간다던 ‘억울한 피해자 모임’ 의 사람 중 한명인가? 그 와중에 [스포일러 : 긁어서 열람]타겟 두 명 중 한명을 찾아가지만 죽이지 못하고 왔는데, 다음날 살해당하고 자신은 누명을 썼다. 이제 정말 끝인가, 벼랑 끝으로 내모는 속도가 빠르다. 결말에 다다르면 전부 ta-da 하고 보여주지만, 그 전까지는 독자들도 끝자락으로 내몬다.

마치며

교보문고에 갔더니 이 책이 소설 베스트셀러 4위더라. 솔직히 많이 놀랐다. 절박한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기민한 위기대응을 보여주는 빠른 전개, 주인공 주변에 흩뿌려진 많은 주변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선들의 철저한 회수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지만 스토리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끝에서 힘을 다 빼버리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좀… 실소가 나올 정도로.

마치기 전에, 나는 엉뚱한 곳에 시선이 갔다. 주인공이 동료에게 돈을 주고 새로운 호적을 받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이 사람은 누구야?’ 라고 묻자, ‘그 사람은 연고도 없고,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묻지마’ 라고 답한다.

이 호적의 원래 주인이 범인이었으면 어땠을까. 너무 뻔했을까.
나는 결말을 알기 전에는 이 장면이 보이지 않았으니, 나에겐 꽤나 신선했을 것 같다.

중독적 습관

요즘 말하는 욜로(YOLO) 에 가까운 삶을 사는 친구가 있다. 일단 불안한 계약직인데다 계약 텀도 굉장히 짧은 직종에 근무한다. 그런데도 잘 놀러 다닌다. 너무나도. 그러면서 늘 걱정을 늘어놓는다.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야지, 정규직도 되면 좋겠지, 계속 놀러 다니고는 싶지… 이런, 쓰고 보니 이 친구는 욜로가 아니다. 내일 살 걱정을 하기는 하니까. 아무튼, 이 친구의 문제는 뭘까, 혹시 쾌락의 끝자락에서 내려오기 싫은 발버둥을 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더 큰 것을 좆을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낀 걸까.

술을 마시던 게임을 하던, 그 때만 즐거을 뿐이다. 숙취에 고통받을 때, 게임 종료 버튼 앞에 있을 때, 우리는 다시 비어있음을 느낀다. 쾌락의 순간에는 더 큰 역치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며 파열을 발생시키는 게 아닐까. 그것이 허무감인지, 어떤건지 잘 모르겠다.

더 큰 보상을 바라는 뇌의 요구와, 중독적인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배제시키는 습관의 힘이 합쳐진 것을 우리는 중독이라고 한다. 올바른 (적어도 사회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성취’의 대부분은, 즉각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상벌이 바로 튀어나오는 행위에 우리는 열광한다. 시간을 들여 보상이 주어지는 성취에 점점 관심을 잃는 것이다. 하는 방법도, 버틸 힘도 잃어버린다.

습관은 더 무서운데, 뇌의 보상기제가 작동하건 말건 이 녀석은 항상 LRU (Least Recently Used) 리스트처럼 행위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자주 한 일일수록 쉽게 선택되고, 전혀 해보지 않은 일 (하지만 한번 쯤 해봐야지 하며 버킷리스트에 채워넣었던 일) 은 선택되기 힘들게 한다. 즉, 새로운 도전은 그만큼의 비용이 들지만, 곁에 둔 습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행동은, 그것이 나쁘건 좋건 간에, 여유 시간에 ‘그냥 할 만한 것들’의 유력한 후보로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 후보는 2선, 3선을 밥먹듯이 할테고, 질 나쁜 행동이 고착화되면 언젠가는 부패할 것이다.

잘못된 습관과 보상기제로 인해 정해진 중독적 행위가 과연 현재를 즐기자라는 다소 낙관적인 말로만 포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숙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됐다는 말을 쓰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뭔가 내가 하는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잘못된 거다. 애석하게도. )

소미의 옆집 아저씨도 ‘오늘만 산다’고 말하지만, 욜로라고 하지 않는다. 다음을 걱정을 하는 자에게, 중독을 이어가는 이 허무함은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신조어는, 실제로 그런 극단적인 허무감을 회피하지 못한 비웃음의 단어는 아닌지, 아니면 정말 해탈했다고 자랑하고 싶은건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암보스 (ambos)

두 여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지만, 그 얼굴 안에서는 마주보기도 하는 듯, 흑심을 품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프랙탈처럼 나타나 있는 기괴한 표지에 담긴 내용은 대체 어떤 사연일까?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만든 새로운 라인업 ‘수상한 서재’ 시리즈의 첫 작품인 김수안 작가의 암보스를 읽어봤다. 시간이 없어 서울-대구를 오가는 KTX 안에서 읽었는데, 다소 두꺼운 외형과는 달리 꽤나 빨리 따라갈 수 있었다.

암보스 (ambos) 는 스페인어로 ‘양쪽, 두 사람’ 이란 뜻이다. 두 여자가 주인공인 것을 표현하고자 했겠으나, 실제로 스페인어는 남성형/여성형 명사가 따로 존재한다. 그래서 표지만 보고는 왜 암바스 (ambas) 라는 여성형 명사를 채택하지 않았을까 자뭇 궁금해졌다. arm boss 같은 느낌도 있어서 나중에 작가 인터뷰를 보니, 두 주인공만을 위한 제목이 아닌 여러 인물들의 관계 자체를 암보스로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줄거리

이하는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서 나온 (그래서 책 소개내용과 거의 흡사한) 초반 상황 요약이다.

신문 기자 이한나 는 어느 날 방화사건 현장에 있었고, 목격한 모든 정보를 회사에 전달한 뒤 의식을 잃었다. 이대로 죽는건가… 아니,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무능하고 철면피인 아버지가 진 빚이며, 헤어진 남자친구며, 내가 잘못 굴린 펜으로 사람이 곤란에 겪었으니까.

깨어나보니, 이한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같은 날 옥상에서 뛰어내렸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던 강유진이란 사람으로. 이한나는 퇴원하자 마자 강유진의 집을 찾아갔는데, 별안간 이한나의 모습을 한 누군가가 뒤따라 찾아왔다. 그는 강유진 이었다.

몸이 뒤바뀐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초자연은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책은 왜 이들의 몸이 바뀌었는지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상대방의 몸을 원했다면, 영화 ‘더 게임’ 의 강회장 (변희봉 扮) 같은 캐릭터가 나와야 하겠지만, 여기선 어느 누구도 그런 역을 자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서로의 삶에서 느끼는 ‘잃은 것과 얻은 것의 의미’를 알아가고 행동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강유진은 비만에 집에 틀어박혀 지내기 일쑤지만 돈이 많았고, 이한나는 예쁜데다 활기차고 자기주관이 강했지만 안하무인 아버지로 인해 많은 빚을 졌다.

설마 강유진의 모습을 한 이한나가 ‘나는 열심히 운동해서 살을 빼야지’ 라거나 ‘이제부터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지’ 같은 뭐 이런 희망적인 스토리를 기대하지는 말자. 그들은 언젠가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유진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돌아가버린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상대방의 미스터리한 행적이 서로의 시선을 통해 서술되는 그 순간.

갑자기 교차하는 사건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그 범인을 찾는 형사가 교차되어 나타난다. 일면 관련없어 보이는 사건 이야기가 갑자기 주인공 일행과 교차점을 지나면서 충돌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파열음은 의외로 강하고, 당사자들의 추리 게임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형사 측 인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박선호 형사일 것이다. 우락부락한 체격과 어울리지 않게 집요하리만치 파고드는 집중력이 소설 내내 돋보인다. 그 옆의 부사수 칠범 역시 파트너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 이한나의 가족과 주변인, 강유진의 증언 등으로 그 사건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는 부분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주인공 일행과의 긴박한 밀당이 계속 이뤄진다. 결국 살인사건은 실마리를 찾고 해결되지만… 이게 정말 끝일까?

이야기 하는 방식

소설이 가지는 강점은 심리 묘사와 비유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그걸 고스란히 전달하려고 노력했단 점이다. 사건의 진위가 아니라, 사건에 휘말린 인물의 세세한 면면을 나타내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스토리 자체에 태클을 걸면서 본다면 자칫 넘어지기 쉬울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을 너그러이 이해해준다면 재밌게 읽힐 소설이지 않을까.

작중 이한나의 시점, 박선호 (를 포함한 외부)의 시점에서는 이한나와 강유진을 지칭하는 자아가 서로 다른 것이 신선했다. 이한나의 시점에서 서술될 때는 ‘나’ 와 ‘(내 모습을 한) 강유진’ 이지만, 그 외에는 외모대로 ‘강유진’ 과 ‘이한나’ 로 서술된다. 박선호가 이를 눈치챈 종반부에서는 서술이 다시 뒤바뀌긴 하지만. 그래서 이 부분을 따라가기가 조금 피곤해 질 수는 있겠다.

마치며

독자에게 추리할 여지를 많이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복선은 야속하게 정류장을 지나치는 시내버스 같이 지나간다. 어느샌가 소설 속 인물들의 추리보다 한발 앞서 나간게 아닐까, 그랬던 거였어!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끈적한 손으로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뒷맛이 찜찜하다. 이게 뭐야, 꼭 그렇게 했어야만 했냐! 같은 느낌.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책을 한번 더 돌려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는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강유진의 모습을 한 이한나가 창문을 바라본다. 창문에는 강유진이 보인다. 내가 정말 나인지, 상대방이 내 모습을 하고 유리창에 나타난건지, 정말로 상대방이 내가 된건지. 나는 누구일까.

사람의 몸이 뒤바뀐다는 초자연적인 전개에만 관심을 가지면 이 소설은 거기서 끝난다. 상대방의 거죽을 쓰고 자신도 몰랐던 민낯이 드러나는 것에 화들짝 놀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