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일을 하려면 쭉쭉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의지가 텅 비어버린 것 같다. 이 의지라는 것은 커피나 술 같은 것으로 긴급 보충이 가능하겠지만 그러기도 싫다. 그냥, 삼일절과 토요일 사이의 한가로운 근무일을 몇 가지 단상으로 때우다 보면 고것이 조금 고여있지 않을까? 그걸로 다시 일을 재개하겠노라 다짐하면서 블로그에 글을 하나 더 얹어 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라고 문득 생각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웃어도 주고 들어도 주는. 그래서 처음에는 웃는 연습을 하고 지식을 채웠었다. (그것이 전문적인 것이던 가십거리가 되었던 간에) 그런데 이상했다. 여전히 날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뭐가 문제지? 아, 마케팅을 잘 못했구나. 1인 기업이니 셀프 마케팅이니 그런 개념을 잊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며칠 전까지는.
마케팅 같은 거창하고 전문적인 개념으로 이 문제를 대하면 피로감이 몰려왔다. 와이프의 선배는 인맥을 관리하기 위해 분기에 한 번씩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주변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고 했다. 아무런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시시껄렁한 말이 오가면 그대로 통화는 끝난다. 이 이야길 처음 들었을 때도 비슷한 피곤이 느껴졌다. 왜 그래야 하지? 저 선배는 마케팅을 참으로 잘 하는구나.
그런데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도와달라’ 고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처한 환경이 극단적인 경우이거나 술에 취했거나 한다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대개는 도움을 줄 사람이 아주 명확한데다 질문하기가 거리낌이 없는 상태라야 저 말이 나온다. 그런데, 도움을 줄 사람이 명확한 경우도 거의 없고, 그 사람이 호의적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면? 반대로, 호의는 가지고 있는데 뭘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면?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그 ‘사람’ 이라는 것이 특정 타겟이 아닌 주변 사람 전부를 의미하는 거라면 접근법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내 문에 노크를 하며 도와달라고 말할 때 까지 기다려서도 안 되고, 주변인들이 필요해 보이는 것을 미리 준비하려고 해도 안 된다. 나도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고, 그 사람도 나를 필요로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른다.
그러니 먼저 가서, 위의 그 선배가 한 것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나의 존재를 알린다. 그 과정이 불편하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대가 뭘 필요로 하고 내가 뭘 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볼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도와줘라. 고민을 들어주고 웃어줘라. 뭔가 더 준비하지 말고, 갖춰진 상태에서 최대한 도와줘라.
설령 도움이 안 되더라도, 적어도 나의 호의는 그대가 느낄 수 있게.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