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 차단을 이유로 회사는 무기한 재택 근무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제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혼자 할 일만 처리하면 마음껏 놀 수 있는 것인가!’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로그를 뒤져가며, 새벽이며 밤이며 게걸스럽게 일을 찾아 하면서 회사님 충성충성 더욱 고단해졌었다.
왜냐하면, 정작 업무 시간에는 애들 육아며 집안일이며 인터럽트도 많았고 개인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자유 때문에 회사에서는 못 해 볼 것들 (e.g. 점심먹고 침대에서 낮잠! 뛰쳐나가서 동네 카페나 서점 들르기!) 을 하다보면 업무 시간을 다 못 채웠다는 이상한 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못다한 일을 나름 채우려고, 저녁 먹고나서 혹시 급히 처리해야 할 버그가 생기진 않았는지 시스템은 잘 도는지 둘러보기 일쑤였다. 회고해보면, 내 뇌는 이런 작은 것까지 다 업무의 연장으로 판단하고, 지속적으로 긴장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안 좋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타임 트래킹 방법을 좀 찾아봤다. 우선 “내가 얼마나 일했는지 적어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이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그냥 메모장에 ‘O시 O분 ~ X시 X분 : 무슨무슨 일 했음’ 이라고 적으려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더 효율적인 방법을 누가 찾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낸 방법이 바로 ‘뽀모도로’ 이다.
뽀모도로 기법이란?
이 방법은 존 손메즈 (John Sonmez) 의 ‘소프트 스킬’ 책에서 처음 접했다. 이 책을 읽은 건 사실 코로나 사태 이전이었는데, 방법을 고민해보다가 불현듯 책에서 나온 뽀모도로 기법을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책장에서 꺼내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뽀모도로 기법은 25분 집중하고 5분 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4번째 휴식마다 5분이 아닌 15분을 쉬면 된다. 이 기법의 발명가인 프란체스코 시릴로 (Francesco Cirillo) 는 ‘뽀모도로 타이머’ 라는 25분짜리 주방용 타이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뽀모도로_pomodoro_ 는 이탈리아어로 ‘토마토’ 라는 뜻이다) 즉, 25분의 집중 시간을 1개의 뽀모도로 라는 단위로 세면, 하루에 몇 개의 뽀모도로를 채웠는지 알 수 있다.
시간 관리 < 집중 향상
뽀모도로 기법은 ‘타임 트래킹’ 이 주 목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보다는, ‘집중 (focus)’ 에 맞춰져 있다. 25분 동안은 스마트폰도 방해 금지 모드로 설정하고, 방문도 닫는다. (방문에 작업중이란 걸개를 걸어뒀다) 아웃룩도 끄고 메신저도 알람을 꺼버린다. 그래서 집중 향상에 좀 더 초점을 맞추도록 강요하는 기법이다. 이게 결과적으론 시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지만 말이다.
이 시간들을 기록하면 좋은 점이, 어느 시간대에 집중을 잘 하고 어느 시간대에 상대적으로 집중이 덜 되는지 (=방해를 받거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지) 를 알 수 있다. 나는 운 좋게도 재택에다가 자율 근무 기반이라서, 내가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인 새벽 시간과 오후 시간을 업무에 할애하고, 보통 아침을 먹은 직후에는 집안일도 하고 개인적인 공부를 한다. 물론 바쁠 때는 여유 부릴 새가 없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때는 가장 좋은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백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이런게 어렵더라
이것만 하면 별거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지키기 어렵다.
- 25분이 생각보다 길다. 타이머를 중간에 쳐다볼 수도 있고, 좀이 쑤실 수 있다.
- 처음에 적응이 어렵다면 20분으로 줄이는 걸 추천한다.
- 그리고 가급적 타이머가 울리기 전 까지는 안 보는 걸 추천한다. 그것 자체가 주의 분산 (distraction) 이다.
- 5분 휴식이 생각보다 짧다. 4개의 뽀모도로를 채우면 15분이 주어지니까 괜찮을 것 같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2시간이나 지나야 휴식 다운 휴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래서 5분 휴식에는 생리적인 일 (e.g. 화장실, 물 마시기, 일어나서 몸 풀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제발. 특히 스마트폰으로 웹 서핑은 되도록이면 하지 말자. 이전 업무의 대부분을 뇌내에서 소거시킨다. 몸이나 푸는게 최고.
- 나는 심지어 이메일이나 메신저 보는 시간도 새로 시작하는 25분 초반에 한 번에 몰아본다. 거기서 업무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나 오래 생각해야 할 거라면, 다음 뽀모도로에서 처리한다. 그 외에는 답장하고 다시 알람을 꺼버린다.
- 4 뽀모도로를 하고 나면, 긴 휴식시간 동안 나름 뿌듯하면서도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와, 내가 2시간 가량 초집중으로 했어! 기특해! 보통 이후의 반응은 둘 중 하나일 텐데, “더 해서 오늘 하루 알차게 보내야지” 와 “이쯤 했으니 나 오늘 괜찮지 않어?” 같은 편협한 생각을 일삼게 된다. 그렇다, 난 후자였다…
도대체 전엔 어떻게 일 한거지- 이건 어쩔 수 없다. 한계를 돌파해보겠다는 어떤 신념으로 단 한번이라도 8, 12 를 해 봐야 한다. 그렇게 해 봐야 ‘나 이렇게까지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었어?’ 라고 보람찬 기분을 느껴보면, 다음 날에는 그만하고 싶다는 저항이 덜하게 될테니까.
뽀모도로 개수에 집착하지 말자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8, 12 뽀모도로는 할 수 있다는데, 16, 20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음… 16이면 산술적으로 (휴식시간 포함) 8시간이 좀 안 되는데, 우리나라 정규 업무시간을 일 8시간이라고 한다면 이론상으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2년동안 16개의 뽀모도로를 채운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난 고3때도 (8시간 기준으로) 그렇게 8시간을 5분, 15분씩 쉬면서 한 적이 없다. 단지 투입 시간이 많았을 뿐…
‘소프트 스킬’ 책에서는, 저자가 일주일에 50-55 의 뽀모도로를 목표로 한다고 나와 있다. 평일 환산하면 10-11 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나 또한 정말 많으면 13개, 보통은 9-10개에 그친다. 팀장님 이 글 보지 마세요! 물론 여러분이 결코 못 할 거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 시간이 8시간이니까 그 시간을 전부 뽀모도로 기법으로 채워서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말 자체가 굉장히 어렵단 말을 해 주고 싶다.
여담이지만, 김영하 작가는 ‘자신은 일을 할 때 에너지를 100% 쏟으면 큰일난다고 생각한다. 60-70% 만 써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면 안 된다’ 라는 말을 알쓸신잡을 통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수학자 앙리 푸엥카레는 규칙적으로 오전 10시-12시까지, 오후 5-7시까지 단 4시간만 일했다고 한다. 그보다 오래 일해봐야 얻는게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나? 그러니 너무 뽀모도로 개수에 강박을 갖지 말자.
타이머 프로그램/앱?
앱을 몇개 둘러보진 않았는데, 나에게는 애플 앱 스토어의 ‘Flat tomato’ 가 제일 나았다. 그렇다고 이게 다른 앱 대비 특출난 건 없고 그냥 깔끔해서. 게다가 이건 결국 유료 구매를 해야 되는 거라 섣불리 추천하기가 애매하다. 다른 앱 중에선 포커스 타이머를 좀 쓰다가, 복잡해서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정 싫으면 PC 용으로 나온 프로그램을 쓰자. 검색해보니 윈도우에는 PowerPom, 맥에서는 flow 가 있다. 둘 다 안 써 봤지만, 옵션이나 통계 기능이 없는, 말 그대로 타이머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뭐라도 써 보자. 통계 기능이 없으면, 하루동안 몇 개 뽀모도로 하는지 세서 일기장에 적으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퀄리티
물론 25분-5분 루틴이 마음에 안 들면 조정할 수도 있다. 학교 때 처럼 50분-10분으로 조정해도 된다.
‘일단, 오늘 1시간만 공부해 봅시다’ 라는 책에서는 결국 50분-10분의 1시간 루틴을 최종적으로 추천하기도 하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겐 안 할란다
중요한 것은, 업무를 할 때나 다른 일을 할 때 그 시간을 확실히 집중해서 보냈느냐를 기록할 수 있고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이 뽀모도로 기법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냥 방해는 받지 않고 모니터에서 멍하니 있었어도 1 뽀모도로로 계산되는 점이 맹점이라고 볼 수는 있다. 이런 아쉬움은, 뽀모도로 기능을 제공하는 앱들 대부분이, 각 뽀모도로 마다 ‘별점’ 을 매길 수 있게 되어 있다. 방해는 안 받았는데 집중이 잘 안됐다면 높은 점수를 주지 않으면 된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퀄리티를 좀 더 세심하게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나는 뽀모도로를 업무에만 쓰지 않는다. 책을 읽을 때도 쓰고 (보통 하루에 2-3 뽀모도로를 쓴다) 프로그래밍 연습을 할 때도 쓰고 (매일은 아니고, 주당 5 뽀모도로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잘 안 된다) 심지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도 쓴다. (물론 내가 원할 때 세이브를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다양한 작업까지 다 합치면 하루에 16 개의 뽀모도로를 모으는 날도 있다. 물론 보낸 시간은 8시간보다 훨씬 많지만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니, 소개한 뽀모도로 기법을 통해 훨씬 가치있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