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낙서장을 원했던 걸까

정갈한 한정식도 아니고, 욕쟁이 할머니가 내어 주는 재미있는 맛이 담긴 한 끼도 아니고, 그냥 쓱쓱 싹싹 콩나물과 보리밥에 눈물 참기름 한 방울, 매운 인생 맛 큰 숟갈 넣어 아구와구 비벼먹을 건데. 일기장은 이뻐봤자 나만 만족하는 것이다. 그런데 난 그게 중요하다고 보거든.

개인적인 이야기와 바깥의 이야기를 구분했으면 해서 만든 것이 블로그였는데,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다. 그 외줄타기를 잘 해야 내 아이덴티티가 쇼윈도에 걸리는 것이긴 하지만, 난 양산형 마네킹이 아니니까 으레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기괴한 포즈를 취할 수 있다. 혐오감을 줄 수도 있고, 저놈 저거 노력하네 같은 행인들의 빈말 몇 마디 정도는 듣겠지.

어릴 적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 반 친구들 몇몇이 우루루 와선 돌려보곤 했다. 별 것 없는 내용, 뻔한 전개지만 내 나름 가장 활발한 리뷰어 (Reviewer) 들이었노라고 자부할 수 있다. 칭찬과 비난이 뚜렷이 섞인 말들은 이내 비난도 지쳐버린 자들의 과거속으로 숨어버렸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내 글도 숨었다.

숨기 싫어서 나온건데, 아직도 예쁜 일기장을 고르려 핫트랙스를 기웃거리는 중학생의 심정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플랫폼은 뭘 하지? NAS 를 사서 내 개인 서버를 꾸며볼까? 책을 읽으려면 아이패드를 사야지? (글 쓰는데 왜 갑자기 아이패드야) 정신을 차려보니, 고민은 목적을 한참 벗어나서 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제 이런 고민 다 필요가 없다. 묵묵히 쓰는게 짱이다. 예쁜 낙서장은 이제 그만 골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