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것을 개념적으로 정의할 때 제품의 철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제품의 시그니처이자 조직 내부를 움직이는 시금석이 되는데, 이걸 등한시하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철학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탐색 속도가 빨라야 한다, 로그인 없이도 정보 제공이 되어야 한다, 고객의 소리에 즉각적으로 귀를 기울인다’ 같은 개념이 철학이지, ‘탐색 속도의 TPS 목표치, 로그인 폼의 형태, 고객이 원하는 것을 나열하는 것’ 자체로 철학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건 요구사항이지, 철학이 아니다.
그런데 후술한 구체적인 것들이 실제로 중요하기 때문에 (특히 고객이 원하는 것) 철학을 도외시하게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조직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은 그 철학에 있는데, 결정권자가 그걸 무시한 채 업무를 단장하는 순간 조직이 와해되는 것은 정말 시간문제다. 회사가 소규모이고, 창립멤버이며, 모두 새로운 이정표로 나아가는 데 동의를 하면 모르겠지만 조직이 커질수록 그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당장의 이익이나 트렌드를 급히 따라가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단순히 예측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배의 크기가 클수록 키를 급하게 돌리면 배 자체에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그걸 막기 위한 것이 조직이 동의한 (혹은 입사 때부터 배웠거나 인정했던) 가치인 것이다. 방향을 틀었다면, 조직 내부에서 큰 합의가 필요한데, 여기에 드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런 합의 없이 진행한다면 더 큰 비용을 감수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터지기 전까진 보이지 않을 뿐.
이걸 지켜내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임을 나는 안다. 초반에는 이걸 지킬 수 있었고, 유연하게 움직이기도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강요로 이끌어나간다면, 언젠가는 더 큰 이자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