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되고 있다

생각이 글이 되고 글이 정제된 다른 글이 되는 연계를 계속 해야 하는데. 어느 샌가 단편적인 이미지, 몇 분짜리 동영상, 흘러가는 명언에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생각의 소스가 되는 것들이 저급한 것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게 내 손에서 일궈진 것이 아니라서 값지지 않게 느껴진다. 유망주 투수의 현란한 로케이션이 담긴 GIF, 대중 매체를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드립, 당신을 움직이게 만들 것이라고 광고하는 몇 컷 짜리 자기계발서 요약 슬라이드들이 그런 것이다.

이전에 내가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너의 돈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너의 시간을 사들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이 바겐 세일, 심지어 공짜라 할 지라도. 한번 소비하기 시작하면, 너의 의지와 방향은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지경으로 만든다. 와닿지 않는다고? 조금 완곡하게 말하자면, 조금의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고, 마치 내가 이런 소비를 해서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전에는 없이도 잘 살았는데. 마치 욕구가 개방된 것 처럼.

사실 전혀 다른 주제 같아 보이는데, 인터넷과 유튜브는 정말이지 이런 자유시장에서 더욱 첨예하게 사람의 욕구를 개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인터넷이란 것이 없었을 때, 집전화를 먹통으로 만들고 PC통신에 접속했을 때, ADSL 이 개통되었을 때, 지식인으로 모든 것을 묻고 답할 때, 싸이월드에서 일촌평을 남길 때, 그리고 지금 모든 인플루언서들과 모든 개인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자유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할 때. 시간의 흐름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격을 무너뜨리고, 정보 독점 체제를 무력화시킨 것 처럼 느껴지게 한다. 모두가 생산자이며 모두가 소비자가 되는 더욱 복잡하고 현란하고 귀찮은 세상이 되었다.

AI 와 로봇이 결합된 4차 산업혁명에 우려를 나타내는 많은 학자와 저자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대안이 ‘자아성찰’ 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게 이미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를 아는 방법 역시 쉽지 않고, 그런 걸 찾기 위한 수단으로 기술을 쓰는 것에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술이 수단을 집어삼켜 나를 휘두르게 놔두지 말자는 것일 뿐. 그런 바보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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