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오늘을 의미있게 살자

좌우명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곁에 두고 보는 말 같은 진부한 설명 대신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생각이나 행동의 근거가 되는 첫 번째 기준이나 신념을 말로 표현한 것’ 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살 수도 없고, 모든 것을 경험하며 살 수도 없다. 모든 것이라는 집합 자체가 유한하지 않은 것이 첫번째고, 우리의 생 또한 무한하지 않은 것이 그 다음이다.

그래서 내 좌우명은 무어냐고 또 물으신다면, 조금 생각을 해 봐야겠다. 내 초등학교 시절은 으레 다른 친구들이 그랬듯 위인전에서 나온 명언 중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 좌우명이라고 정하고 다녔기 때문에, 당시 내 좌우명도 ‘시간을 금 같이 보라’ 였다. 어, 이거 최영 장군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 것 같은데, 아무튼 난 이게 마음에 들었다. 시간은 소중히 써야 한다. 지나간 시간은 저축할 수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일기를 읽어보면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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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상적인 순간

햇살이 드리우는 책상 앞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두고, 논문을 집어들어 책갈피 너머의 페이지로 넘겨 보는 나 자신을 상상하는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다. 학창 시절 때는, 집중해서 공부하는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을 내가 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한 적도 있다. 그러면 이내 흐트러지고, 방금 전 몰두하던 이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그리는 이상을 직접 행하고 있을 때는, 그 상황을 자신이 그려왔던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그 장면이 아름답거나 만족하는 순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장면을 보려고 하는 나 자신이 잠시 사라지는 순간이다. 숙제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연습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그 장면 자체는 멋져보일 수 있겠지만 그 속에 있는 정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 많은 것들에 신경을 쓴다. 그것들은,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결코 아름답거나 원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이 과정, 이 결과를 상상하는 사람이 돌리는 쳇바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순간을 바라보는 사람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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