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툰으로 (나를 포함한) 많은 팔로워를 둔 지수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 인스타그램에선 몇 장의 사진으로 하나의 포스트를 이루는데, 다양한 관계와 이따금씩 드는 기분에 대하여 친근하면서도 진솔한 해석을 남긴다. 독자에게 공감을 남기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다.
책은 주로 작가의 일상에서 출발해 어떤 생각에 도달했는지를 풀어나가지만, 비단 작가 개인만이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공감하기 쉬운 주제들로 엮었다. 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질문이 결코 강압적이지 않고, 너가 무슨 생각이 들던 나는 그랬다며 미소짓는 듯하다. 이 책은 마치 김토끼의 얼굴을 닮았다.
기억나는 문구
몇 가지 기억나는 부분을 표시했는데, 필사를 해 보니 다음이 남았다. (허락받고 발췌해야 하나?!)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지름길은 없다. 누구도 명쾌하게 답해 주지 않는다.
인생에는 긴지 짧은지 대 볼 수 있는 명확한 줄자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이뤄낸 것을 내가 꼭 이뤄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분야를 잘 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예전보다 남들과 비교하기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연예 기사를 보면서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는다. 때로는 그 이야기 속에 ‘여러분도 저 처럼 될 수 있어요!’ 라며 그들만의 줄자를 나에게 들이밀 때도 있다. 잠시 그 소음을 내려놓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만의 줄자를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건, 그게 다른 사람의 것보다 하찮고 짧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
볼링 내기할 때만 그러면 좋으련만 나는 평소에도 내 손을 떠난 일에 시간과 정신을 쏟곤 한다.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졌을 때 오히려 더 악착같이 집착할 때도 있다.
볼링공을 던져놓고 허공에다 대고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에 걱정이 많은 타입인데, 비유가 너무나도 찰지다. 내 손에서 떠난 볼링공을 손짓 발짓을 해가며 기다리는 것. 기우제가 따로 없다.
(구독자들에게) 고마운 것은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다.
그 존재 덕에 큰 위로를 받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 생각에 반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가. 작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만큼이나, 구독자들도 작가에게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라 여긴다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진 않았다는 뜻이지 않을까.
세계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 단기로 일거리를 구한 프리랜서, 사직서 한 장을 늘 품고 다니는 마케터, 꿈의 회사로 이직할 작정으로 경력을 쌓는 회사원, 자기가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 아이스크림 회사 사장, 책보다는 커피를 좋아하는 서점 주인, 틈틈이 쓴 소설로 매해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독서실 아르바이트생 등등…
기가막힌 플로우를 타고 흐르는 래핑 같아서, 가장 애정하는 문구이다. 특히 ‘아이스크림 안 먹는 사장’ 에서 머리가 뎅- 울렸다. 우리는 회사 이름 뒤에, 직함 뒤에, 직업 뒤에 숨어서 우리 삶을 과하게 일반화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안에서 우리는 반짝반짝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빛깔을 때깔나게 발산할 수 있는데, 그 뒤에 숨어버려서 남들 하는 만큼만 하고 말아버리는 것일지도.
에세이의 힘
이 책을 읽으면서, 때때로 내 과거는 다른 사람의 과거와 ‘똑’ 같을 수가 없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한 것들을 이렇게 남들에게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다. 물론 이렇게 잘 할 순 없겠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책에서 이야기하는 마지막 구절. 의무적으로 꿈을 꾸는, 노력하는 시간을 들여야 언젠간 꿈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공돌이 한 명은, 전공과 전혀 다른 기묘한 꿈을 꾸어 본다. 나는 이제부터 토끼지 않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