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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liminal

서브리미널 (Subliminal) 은 식역하 (識閾下) 라고도 하는데, 인지하는 영역 밖에서 우리가 인지한 것들을 말한다. 김현정의 노래를 뒤로 감아 돌리면 ‘MP3 다운 말고 제발 앨범 사주세요’ 처럼 들리는 식의 이른바 백마스킹 (backmasking) 도 그 일종이고, 연구에는 실패했노라 결론났지만 영상에 중간 중간 메시지를 짧은 시간 반복적으로 노출하면, 시청자들이 인지하기 전에 그 메시지를 따른다는 이론도 있었다.

그렇다면 식역상 (識閾上) 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인지하고 있다지만 사실은 그게 충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인지하는 방법이 사실은 틀린 것이라면?

1인칭 퍼즐 슈터 게임의 계보를 잇는 게임, 슈퍼리미널 (Superliminal) 엔딩을 봤다. 우리의 인지방식, 그러니까 관점에 대한 내러티브를 통해 교훈을 주는 퍼즐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보이는 대로 플레이 한다는 참신함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금껏 나온 여러 게임의 믹스처럼 느껴졌다.

스탠리 패러블? 안티챔버? 포탈?

처음엔 스탠리 패러블같이 배배 꼬여있는 법칙들과, 알 수 없는 나레이션들이 주위를 감쌌다. 그렇다고 멀티 엔딩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그 만큼 다채롭진 않다. 배배 꼬여있는 법칙을 풀기 위해선 말도 안되는 생각들을 끼워넣어야 하는데, 이건 마치 안티챔버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게임이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은, 내러티브와 제4의 벽을 이용한 스탠리 보다는 안티챔버와 비슷한 결을 내고 있다. 그리고 기본적인 퍼즐 플레이 자체는 어쩔 수 없이 포탈과 비슷하다. 물건을 버튼 위에 놓아둬야 문이 열리는 루트는 누가 봐도 포탈이다.

이런 특성을 고스란히 믹스해 두면서도,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아니, 셋 다 내가 봤을 땐 대단한 게임들이라서, 오히려 세 가지 색을 섞고 비어있는 걸 창조한게 아닌가 하는 질 나쁜 의심마저 들 정도다. 사실은 ‘보이는 대로 만들자’ 라고 만들었더니 저런 것들이 다 들어가 있던 것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포탈이야 거의 모든 게임에 영향을 줬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기본 값으로 쳐도, 이 게임은 굳이 비교를 하자면 스탠리의 스킨을 쓴 안티 챔버다.

단순하진 못한 게임 규칙

게임의 볼륨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데, 왜냐하면 아까 말 했듯 선형적인 구조기 때문에 리플레이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퍼즐 자체의 난이도 1인칭 퍼즐 슈터 장르 안에서는 쉬운 순서로 랭크될 게임이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는 제작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바로 인지영역 밖의 퍼즐 디자인 자체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금까지 언급되건 언급되지 않았건, 1인칭 퍼즐은 단순하고 체계적인 법칙으로 게임의 동력을 만든다. 포탈은 ‘물리 법칙’, 탈로스의 법칙은 ‘전기’, 그리고 더 위트니스 (The Witness) 는 ‘그리기’ 라는 도구로 설명할 수 있으니, 어떤 방식으로도 디자인 해도 푸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안티 챔버는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을 진 몰라도, 게임 자체가 미쳤기 때문에 (…) 말도 안되는 법칙을 섞어낼 수도 있었던데다 매터 건의 법칙은 일면 단순했기 때문에 (호불호가 있겠지만) 정복 욕구가 생길 수 있었다. 스탠리는 애당초 퍼즐 정복이 아닌 엔딩 정복 게임 같은 거니까 차치하고.

그런데 슈퍼리미널에선, 조금만 어렵게 만들어도 풀 수 있는 사람이 엄청나게 제한되며, 누가 이런걸 공략으로 올리면 ‘아니 이게 무슨 억지야’ 라는 댓글이 달리기 뻔하기 때문이다. 그 균형을 맞추려면 디자인 패턴에 제약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게임이 그 부분을 얼마나 잘 풀어냈는지는 직접 플레이 해보시길.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 게임이 주는 메시지는 ‘불가능 할 거 같지만 다르게 보면 가능할지도?‘ 라는 것이다. 사실상 이게 전부긴 한데, 후반부로 진입할 수록 이 메시지와 내가 풀고 있는 퍼즐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생겼다. 그래서 어떡하란 건지, 더 이상 현실이 아닌 공간에 플레이러를 가두고는 “할 수 없었던 걸 하니까 좋지요?” 라는 메시지가 갑자기 들어오면 쉽사리 공감이 가질 않는다. 그 때부턴 그냥 게임을 ‘게임답게’ 받아들이고 퍼즐 푸는데만 집중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참신함, 1인칭 퍼즐에 목말라 있던 유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작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참신함이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서도 크게 와닿지 않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이제 또 다른 관점에서 하루를 시작해 볼 차례다. 게임에서처럼, 알람 소리가 당신을 깨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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